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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를 위한 정책 제안: 총론

총론 - “표현의 자유” 이름으로 외치다

  • 총론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프랑크 라 뤼(Mr. Frank La Rue, UN Special Rapporteur on the Promotion and Protection of the Right to Freedom of Opinion and Expression)는 2011년 대한민국 표현의 자유 보고서에서 “대한민국에서의 표현의 자유 영역은 최근 몇 년간, 특히 2008년의 촛불시위 이후로 줄어들고 있음을 주목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미 유엔 자유권위원회 등 국제인권기구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폐지권고를 받아 왔던 국가보안법은 최근 수년 사이에 북한 관련 표현에 대한 통제수단으로 그 위력이 되살아나고 있으며, 명예훼손죄, 업무방해죄 등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처벌규정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의한 집회·시위의 규제, 공직선거법에 의한 통제 등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수많은 법제도들이 전방위적으로 동원되어 표현의 자유를 후퇴시키고 있다. 우리의 역사에서 표현의 자유가 제대로 보장된 경험은 거의 없지만, 표현의 자유 영역에서 이명박 정부에 들어 전개된 권력적 통제는 한층 교묘하고도 적나라한 통제와 억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표현의 자유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표현의 자유는 주로 정치적인 주장과 의견 제시에서 국가 권력적 통제로 인한 마찰이 발생하지만, 따지고 보면 표현의 자유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 있다. 매일 듣는 노래, 매일의 일상적인 대화에서부터 인터넷상에 글쓰기,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한 소통에서 우리가 의식하건 하지 않건 간에 우리는 표현의 자유의 한계선을 접하고 있다.
    우리는 왜 표현의 자유를 말해야 하는가? 표현의 자유는 왜 중요하고, 우리가 직면한 억압과 규제의 현실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표현의 자유의 다양한 각각의 영역에는 그것에 고유한 원리와 통제현실이 제각각일 테지만, 구체적인 이슈와 문제를 제기하기에 앞서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 그리고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현실의 맥락을 개괄적으로나마 짚어보는 것이 표현의 자유에 관한 우리의 인식을 총체화하는 데에는 유용하고 필요하다.

    1. 표현의 자유의 가치와 중요성 –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

    어떤 의견을 가지는 것, 그리고 그것을 타인에게, 사회를 향해 표현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이며 실천이다. 일상적인 대화와 소통에서 감정과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출발해 본다면, 표현의 자유의 가치와 중요성을 설파하는 가장 고전적인 설명은 그것을 사람들의 “인격적 자기 실현의 수단”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기본적 인권으로 보호하여야 할 정당성은 인간의 인격적 자기실현 욕구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표현은 “인간이 생각을 발전시키고, 정신적으로 탐구하고, 스스로를 긍정하는데 필요한 내적 부분”으로서 인격권의 핵심을 이룬다.
    표현의 자유는 무엇보다 공적 사안에 대한 정치적 담론 형성의 맥락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에 주목하여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이론으로는 ‘사상의 자유시장(marketplace of ideas) 이론’, ‘주권자로서 국민의 자기지배(self-government) 이론’ 등이 발전되어 왔다.
    우선 사상의 자유시장론은 진리는 사상의 자유로운 교환에 의해서 발견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국가권력이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여 나쁜 사상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특정한 사상이나 표현을 억압한다면 그 사회는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무엇이 진리인가는 주어진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일도양단 식으로 증명되지도 않는다. 정치공동체를 구성하는 시민들의 다양한 생각이 자유롭게 표현되고 토론되는 과정에서 설득과 합의에 의하여 우리는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표현의 내용에 대하여 일정한 잣대를 가지고 규제하는 것은 사상의 자유로운 교환을 왜곡시킬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여기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검열금지의 원칙이 도출될 수 있다. 사상의 자유시장론은 미국연방대법관 홈스(Holmes)의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 “궁극적인 선은 사상의 자유로운 교환에 의하여 더욱 잘 달성된다. 즉 진실을 발견하는 최선의 시험은 어떤 사상이 스스로 힘으로 시장의 경쟁에서 살아남아 받아들여지는 힘이며, 진실이 사람들의 욕구를 안전하게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이다.”
    ‘주권자로서 국민의 자기지배’ 이론은 주권자인 국민이 정치적 의사결정의 주권을 온전하게 행사하기 위해서는 표현의 자유가 최대한 보호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권력의 정당성은 주권자인 국민의 동의로부터 나오며, 국민은 자신의 동의권을 행사하는 데 필요한 표현의 자유를 충분히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메이클존(Alexander Meiklejohn)은 유권자가 투표하기 전에 투표와 관련된 모든 사실과 이해관계를 알아야 한다는 현실적인 측면에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였으며, 권력자가 정보를 은폐하고 비판을 억압하여 유권자들을 조종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공익적 목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이미 민주주의의 원리에 반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도 그러한 맥락에서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민주정치에 있어서 정치활동은 사상, 의견의 자유로운 표현과 교환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언론ㆍ출판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시행될 수 없으며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 않은 나라는 엄격한 의미에서 민주국가라 하기 어려운 것”, “언론ㆍ출판의 자유는 민주체제에 있어서 불가결의 본질적 요소이다. 사회구성원이 자신의 사상과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모든 민주사회의 기초이며, 사상의 자유로운 교환을 위한 열린 공간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민주정치는 결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헌법재판소는 “표현의 자유가 다른 기본권에 우선하는 헌법상의 지위를 가진다고 일컬어지는 것도 그것이 단순히 개인의 자유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통치권자를 비판함으로써 피치자가 스스로 지배기구에 참여한다고 하는 자치정체의 이념을 그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판시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여러 가지 이론적인 설명에도 불구하고 표현의 자유가 왜 중요한가를 한마디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쓴다면, 표현의 자유의 가치는 민주주의와의 연관 속에서 조명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표현의 자유의 의미는 시민들이 개개의 인격체로서 그리고 주권자로서 자유롭고 민주적인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필수조건이다. 민주주의의 관점은 표현의 자유의 가치와 중요성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다음의 몇 가지를 지시해 준다.
    첫째, 의사소통 주체로서 시민성이다. 우리는 합리적인 의사소통과 시민적 연대를 통해 진리에 도달할 자유를 지녀야 한다. 무엇이 진리인가를 결정하고 그것을 정치공동체의 형성에 반영할 권리가 있다. 이는 단순히 ‘사상의 자유로운 교환’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의사표현의 주체로서 시민적 자율성은 개개인의 것이기도 하지만 상호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소통 주체로서 타인의 시민자격을 부정하는 표현은 정당화될 수 없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혐오적 발언은 그 대표적인 예가 된다. 표현의 자유가 무한정하지 않다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 정확하게는 오직 이러한 맥락에서만 – 의미를 갖는다.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적 소통과 공동체 형성에 기여한다는 것은 시민들 상호간에 타인의 시민성을 인정하는 전제 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둘째, 사상과 표현에 대한 국가권력의 후견적 개입과 통제는 단호하게 거부되어야 한다. 공동체의 삶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공동체의 형성에 필요한 가치를 수렴하는 것은 민주주의적 공동체 형성의 필수조건이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국가권력의 사전적 검열과 통제는 물론이고 어떠한 표현인가에 따라 사후적인 통제를 가하는 것도 정당화되지 않는다. 무엇이 현명한 의견인가, 우리가 어떠한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가의 판단주체는 궁극적으로는 시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표현공간의 개방성과 다양성이 존중되고 보장되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개개인 시민의 자유권으로 보장되어야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시민들이 표현의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은 종종 권력적 비대칭성을 점철되어 있다. 무엇인가를 표현할 자유가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표현할 공간에의 접근성이 불평등하게 구조화되어 있거나 표현공간에 대한 국가권력의 통제가 만연해 있다면 표현의 자유는 결코 시민의 것으로 향유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인터넷 등 표현 공간의 자율성과 개방성을 확보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온전하게 보장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현재 인터넷상의 표현에 대해서는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행정심의제도에 의해 광범위한 통제가 만연해 있으며 이명박 정부에서 인터넷상의 표현에 대한 행정적 규제는 그 강도가 더욱 거세지고 있음은 매우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어야 한다. ‘거리’의 복원도 중요하다. ‘거리’는 시민들의 소통과 표현을 위한 공공의 공간이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직면한 현실에서 ‘거리’는 교통소통 내지 질서유지라는 명목으로 경찰 등 국가권력에 의해 점령된 상태에 있다. 집회·시위의 자유보다 자동차 교통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식의 담론이 우리 사회에 횡행하고 있는 현실은 매우 우려스럽다. 다른 한편으로, 표현공간 중에서 방송의 경우에는 전파의 한정성이라는 제약 때문에 공공성의 원리에 입각해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개입이 부분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도 중요하다.

    2.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 – 사례와 경향

    사실 냉정하게 보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각종 법과 제도들은 도처에 산재해 있으며, 우리의 일상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장치들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는 맥락이 명확하게 인식되지 않은 채로 때로는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어 온 측면이 있으며, 명예훼손죄와 모욕죄의 처벌규정이 대표적으로 그러하다. 때로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의 장치들은 민주주의의 성장과 함께 그 적나라한 모습을 우리의 눈앞에 드러내게 마련이다. 흔히 이명박 정부에 들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었다고 말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권력의 ‘남용’을 우려하기도 한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과 ‘통제권력의 남용’은 이명박 정부가 시민들에게 보여준 현실이다. 그렇지만, 이는 단순하게 ‘위축’ 내지 ‘남용’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수년 사이에 적나라하게 펼쳐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 사례들은 오히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적 통제장치들을 근원적으로 개선하지 않는 한 표현의 자유가 결코 정치권력의 호의에 의존해서는 결코 달성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일깨워주고 있다. 우리의 관심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통제장치들, 법제도들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로 향해야 한다.
    아래에서는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적나라한 통제와 억압의 대표적인 사례를 간략하게 거론해 본다.

    가. 명예훼손죄의 남용

    MBC ‘PD수첩’ 명예훼손사건은 2008년 4월 29일 MBC PD수첩이 방영한 광우병 관련 프로그램에 대해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등의 명예를 훼손하고 쇠고기수입업체의 업무를 방해하였다는 혐의로 PD수첩 담당 PD 4명과 작가 1명을 불구속기소한 사건이다. 이 사건의 재판은 결국 대법원까지 갔으나 무죄판결로 확정되었다. 이 사건은 정부 정책에 대한 언론의 비판적인 보도를 장관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사건화한 것이라는 점에 특징이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이와 유사하게 정부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적인 문제제기와 주장에 대해 명예훼손이라는 형사적, 민사적 통제를 동원하는 예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박원순 변호사(현 서울시장)에 대한 국정원의 명예훼손 민사소송 사건도 그러했고, 최근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하여 “해적기지” 발언에 대해 해군 측이 명예훼손죄로 검찰에 고소한 사건 등이 대표적인 예가 된다.
    이러한 사례들은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과 표현을 ‘사적 주체로서 공직자 개인 혹은 국가기관의 명예 실추’의 문제로 교묘하게 변질시킴으로써 그러한 비판적인 표현과 주장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한다는 점이 특징이자 문제의 핵심이다.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표현을 명예훼손으로 규제하는 공익담론의 핵심적인 키워드는 ‘사회적 자본으로서 신뢰’이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장관 등 정부관료, 더 나아가서는 재벌회장 등에 이르기까지, PD수첩 사건이나 미네르바 사건의 경우를 보면(물론 미네르바사건은 명예훼손사건은 아니다), 무분별한 언론보도나 시민들의 비판적인 표현이 국가 혹은 국가기관의 정책적 신뢰성의 상실을 야기하고 이것이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의 신인도를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
    는 점이 검찰과 일부 언론이 주도하는 ‘공익담론’의 해석코드로 등장하고 있다. 요컨대,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은 정부의 대외적, 국제적 신뢰성에 타격을 줌으로써 엄청난 공익적 피해를 야기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형사적으로 강력하게 규제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명예훼손에 관한 민·형사적 책임의 법제도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거듭나고 있다.

    나. 평화집회의 권리의 궤멸

    이명박 정부에서 표현의 자유로서 가장 적나라한 탄압을 받은 영역은 아마도 집회 시위의 자유 영역일 것이다. 2008년 광우병쇠고기수입반대 촛불집회에 대하여 경찰과 검찰은 불법집회라는 이유로 집회를 금지하였음은 물론이고, 촛불집회가 잦아든 이후에서 광범위한 수사와 기소로 촛불집회 참가 시민들에 대한 통제를 가하고 있다. 광우병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는 사회적 갈등과 가치충돌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의 성숙한 민주주의 문화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인터넷을 통하여 전개된 시민들의 적극적이고 활발한 의사소통이 배경이 되었으며, 촛불집회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 속에 하나의 커다란 민주주의적 소통의 장을 형성하였다. 시민들이 주축이 되어 비폭력 평화집회를 주도하였다. 하지만 정부와 검찰은 ‘무관용 원칙’에 입각하여 단호하고 엄격한 처벌로 대응하였다.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008년 5월 28일 검찰은 공안대책협의회를 개최하여 촛불집회에 대한 엄벌방침을 밝힌 이후 수사당국은 집회참가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연행하고 입건하였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에게는 대개 집시법 위반, 일반교통방해,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 등의 혐의가 적용되었으며, 2008년 12월에 이미 70명이 구속기소되었고 불구속기소된 시민도 100여명에 이를 정도였다. 무려 1,100여명의 참
    가시민들이 50만원 내지 400만원의 벌금으로 약식기소되었다.
    2011년 부산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에 맞선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크레인 농성은 우리 사회에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를 커다란 사회적 이슈로 제기해 주었다. ‘희망의 버스’라는 이름 하에 수많은 시민들이 김진숙 지도위원의 문제제기와 농성에 자발적으로 연대하였다. 그러나 경찰은 희망버스의 모든 집회를 불허하였고, 차벽설치, 살수차 동원 등으로 평화집회에 대한 억압을 자행하였다. 희망의 버스 참가자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소환과 형사처벌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다. 소비자운동으로서의 표현에 대한 탄압

    네티즌의 조중동 광고불매운동에 대한 탄압으로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이하 ‘언소주’) 사건도 주목할 만하다. 1차 언소주 사건은 조선, 중앙, 동아 3개 신문이 촛불집회를 불순한 세력이 배후에 있는 불법폭력집회로 왜곡하고 편파보도하는 대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저항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시민들은 조중동에 광고를 게재하는 광고주 기업들에 대한 압박운동으로 항의전화걸기, 항의게시글쓰기 등으로 시민들의 의사를 표현하였다. 이에 대하여 2008년 6월 법무부 장관은 조중동 광고중단운동
    을 벌인 네티즌들을 법과 질서를 파괴하는 ‘죄질이 나쁜 범죄’로 규정짓고 엄중수사 지시한 바 있으며, 검찰은 2008년 8월 언소주 카페 개설자 등 2명을 구속기소하고, 11명을 불구속기소하였다. 이 사건의 재판은 제1심 및 항소심 판결에서 모두 유죄판결이 선고되었으며, 현재 대법원에 사건이 계류 중이다. 이후에 언소주측은 조중동에 광고를 게재한 기업에 대해 다른 언론사에도 동등한 수준의 광고를 게재하지 않을 경우에 ‘우선 기자회견을 통해 해당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을 선언하고 이어 1인 시위 및 온·오프라인상의 불매운동을 벌이는 방식’으로 광고불매운동의 방식을 변경하였고 일차적으로 (주)광동제약에 대해 위와 같은 방식의 불매운동을 선언하였으며, 이후 곧바로 광동제약 측과의 협의를 통하여 해당 기업이 조중동 외에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 등에도 동등한 수준으로 광고를 게재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해당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을 철회한 바 있다. 이에 대하여 검찰은 언소주 대표 김00에게 공갈죄와 강요죄를 적용하여 기소하였다.
    소비자운동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헌법 제124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기업과 사회를 향한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로 보호되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1차 및 2차 언소주 사건에서 드러난 억압과 통제는 소비자운동의 권리가 표현의 자유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기업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통제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라. 허위의 표현이라는 이유로 규제?

    ‘미네르바’ 허위통신죄 사건은 인터넷에서 경제분석가로 수많은 글을 써 온 ‘미네르바’(박00)에 대하여 검찰이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허위통신죄) 위반죄로 전격적으로 구속기소한 사건이다. 1,000여 편에 달하는 그의 글 중에서 검찰이 문제 삼은 것은 2008년 7월 30일과 12월 29일에 쓴 두 개의 글뿐이다. 특히 정부당국자가 외환매수의 자제를 ‘구두로’ 요청하였다는 사실을 ‘공문으로 보냈다’고 기술한 것이 전기통신기본법상 허위통신죄의 ‘공익을 해할 목적’과 ‘허위’에 해당한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었다. 2009.4.2. 제1심 재판부는 ‘미네르바’의 글이 ‘허위’에 해당한다는 점은 인정하였지만, 허위통신죄 규정은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으므로 ‘공익을 해할 목적’에 해당하는가의 판단은 엄격한 기준에 의해야 한다고 판시하면서 무죄를 선고하였으며, 2010.12.28. 허위통신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이 사건은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과 표현에 대하여 ‘지엽적인 허위표현’을 빙자하여 형사처벌이라는 통제가 가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건이다.

    마. 인터넷상 표현에 대한 광범위한 통제

    인터넷은 모든 시민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접속하여 자신의 의견을 손쉽게 표현하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오늘날 인터넷은 민주주의적 소통의 열린 공간으로 성장해 왔다. 그렇지만, 인터넷사상의 각종 표현에 대해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행정심의에 의한 통제가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7(불법정보의 유통금지 등) 등을 근거로 하여 행정기관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자의적으로 게시물의 불법성을 판단하고 게시물의 삭제 등의 통제를 가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소위 ‘불법정보 근절’ 내지 ‘통신윤리 함양’이라는 명분으로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을 감시한다. 자체 모니터링도 하지만, 정부기관으로부터 문제 되는 표현물에 대한 심의요청을 받기도 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음란, 권리침해, 폭력성, 사행성조장, 법질서위반 등의 사유로 해당 표현물을 게시한 포털사이트나 기관에 삭제를 요구할 권한이 있다. 인터넷표현물의 불법 여부에 대한 방통심의위의 판단은 거의 절대적이다. 모호하고 추상적인 법규정을 근거로 해서 마음만 먹으면 불법정보로 규제할 수 있다. 삭제요구는 법적인 강제성은 없지만, 정부기구인 방통심의위의 삭제요청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삭제요청의 수용률은 99.4%(2010년 12월까지의 통계)에 이른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 2008년 7월 방통심의위는 소비자들이 작성한 불매운동 게시물이 ‘위법적인 2차 보이콧’이라며 삭제를 결정하였다. 광우병쇠고기 수입반대를 위한 촛불시위가 한창일 무렵, 소위 조중동 3개 신문사의 촛불시위 왜곡보도에 항의하고 불매운동을 하기 위하여 일반 시민들이 해당 신문사에 광고를 게재한 기업들의 명단과 공개된 전화번호를 인터넷에 게시한 것이 삭제대상이었다. ‘위법적인 2차 보이콧’이라는 방통심의위의 논리는 법적으로 전혀 유효한 것이 아니었다. 2009년 4월 방통심의위는 환경운동가인 목사가 자신의 블로그에 현재 건설에 사용되고 있는 시멘트가 각종 폐기물을 원료로 하여 발암물질을 발생시킨다는 내용의 글을 게시한 것에 대해 한국시멘트협회의 삭제요청이 따라 삭제 결정을 하였다. 이 사건은 명예훼손의 고발도 있었지만 검찰에서 무혐의처분이 내려졌으며, 방통심의위의 삭제결정에 대해서 2010년 2월 서울행정법원은 이 게시물 삭제를 취소하라고 판결하였다(이 사건은 방통심의위가 항소하여 진행중이다). 2009년 6월에는 노동절 집회 참가 시민들을 향해 장봉을 휘두른 경찰의 모습을 담은 보도사진과 이름을 게재한 게시물에 대하여 ‘초상권’ 침해라며 삭제 결정을 하였고,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하여서도 정부와 다른 견해를 표방한 게시물이나 대통령에 대한 욕설 게시물은 집중적인 삭제대상이 되었다.

    바. 국가보안법의 부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법으로서 국가보안법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유엔 자유권위원회, 국제앰네스티 등 국제인권기구들은 한결같이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권고해 왔으며, 2004년에는 국회에서 국회의원 과반수의 서명으로 국가보안법 폐지법률안이 발의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이명박 정부에 들어 국가보안법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통제장치로서의 면모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2008년에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46건이 입건되었지만 2009년 57건, 2010년 97건으로 급증하였으며 2011년에는 7월까지 41건이 입건되었다고 한다. 또한, 지난 3년간 입건되거나 기소된 국가보안법 사건의 내용을 보면, 제7조(찬양고무, 이적표현물 등)를 적용한 사건의 비율이 매우 높다는 특징을 보인다. 대검찰청 자료에 의하면, 2008년에는 찬양고무죄 사건이 33%(15건/46건)였지만, 2009년에는 40%(23건/57건), 2010년에는 64%(62건/97건)로 급증하더니, 2011년에는 7월까지 85%(35건/41건)의 사건이 제7조 사건이다.
    특히 국가보안법 제7조 적용이 급증하였음을 주목해 보아야 한다. 제7조의 찬양·고무나 이적표현물죄는 시민들이 정치적 의견이나 사상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것을 처벌대상으로 삼고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북한의 정책이나 선전에 동조하는 글을 쓰면 찬양고무죄가 되고, 그러한 내용의 문건을 만들거나 소지하고 있으면 이적표현물죄에 해당하여 경찰이나 국정원 등 공안기관의 수사대상에 오르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물론 찬양고무나 이적표현물죄가 성립하려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주관적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 요건은 1990년 헌법재판소의 한정합헌 결정 이후에 제7조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추가된 것이다. 그런데 아래에서 보겠지만, 이 요건은 실제로는 국가보안법 제7조가 정치적 표현을 과도하게 규제하는 현실을 개선할 만한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뿐만 아니라 이 요건은 그 자체로 매우 모호하고 추상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수사기관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주장이나 표현이 있으면 일단 이 규정에 해당한다고 단정해 버리는 형태가 반복된다. 나중에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기도 하지만 그것은 나중의 일이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과 위축, 그리고 수사권력의 남용은 이렇게 시작되며, 바로 그래서 위험한 것이다.
    2012.1.11. 국가보안법 제7조 위반혐의로 구속된 박정근 씨의 사례는 국가보안법 남용의 극치를 보여준 사건이다.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이용하여 북한의 인터넷매체인 ‘우리민족끼리(www.uriminzokkiri.com)’의 트위터 계정 ‘@uriminzok’이 게재한 글을 받아 이를 리트윗하여 팔로워들에게 전송하였다는 것이 주된 혐의이다. 북한체제를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풍자적인 글, 패러디 표현에 대해서도 검찰은 무차별적으로 국가보안법의 잣대를 들이대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경고의 메시지는 북한의 주장이나 정책을 표현하는 사람은 사상검증, 그것도 매카시즘적 사상검증을 받아야 하는 암울한 사상통제의 현실의 문제이다.

    3.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과 통제의 맥락적 이해

    표현의 자유에 대한 통제와 억압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군사독재정부 시절에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은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한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정치·경제적 국면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과 통제의 현실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있다. 종합적이고 거시적인 분석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최소한 다음과 같은 맥락적인 분석은 가능할 것이다.
    최근에 들면서, 특히 이명박 정부하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 더욱 노골화되고 있는 배경에는 분명 사회적, 계급적 갈등의 격화라는 정치·경제적 맥락이 작용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자본 이윤창출의 유연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노동시장을 재편하였으며, 이러한 정책은 기업 안에서, 기업 내 부서 안에서 그리고 노동시장 전반에 걸쳐 모든 노동주체들을 임금관계의 개별화를 통한 경쟁 관계에 예속시키는 방식으로 개인의 개별화 내지 파편화 전략을 구사한다. 신자유주의 질서에서 국가 권력과 자본의 횡포에 대하여 시민들의 저항적 의사표현의 분출은 격렬해질 수밖에 없고 지배권력의 억압은 더욱 폭력적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시민의 저항적 표현과 주장, 행동의 분출을 통제하는 담론은 소위 ‘법질서 정책(law and order policy)’과 무관용주의로 나타나고 있다. ‘법질서 정책’이란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재분배정책으로 인해 초래되는 사회적 불안정과 시민의 저항이 사회질서의 붕괴로 나타나지 않도록 사회적 위험을 관리하는 도구로서 ‘법치’를 강조하는 정책을 일컫는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이미 소위 ‘법질서 정책’을 매우 강력하게 표방한 바 있다. 특히 검찰은 2008년 5월 27일 대검찰청 공안부 주재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불법집단행동 관련 유관기관협의회」에서 “명백한 불법·폭력집회에 대해서는 ① 무관용 ② 무폭력 ③ 무질서 추방의 3무 원칙”을 관철하겠다고 하면서, “폭력·불법 집회·시위의 주동자 및 배후사범에 대해 끝까지 추적, 처벌함으로써, 불법행위의 반복 악순환 근절”의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여기에서 ‘법치’의 의미가 교묘하게 왜곡되고 있다. 법치주의란 본래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해야 할 국가의 의무(기본권보장의무)를 근거로 하여 시민사회가 국가권력을 통제하는 원리로 정립된 것임에도 오늘날 소위 법질서 이데올로기 하에서 법치는 공익을 위해 시민이 감수해야 할 의무를 강조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어 버렸다. 법치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원리가 아니라 공익을 근거로 해서 시민의 저항적 표현과 활동을 규제하는 원리로 변질된 것이다.
    공공성 및 공익이라는 담론은 시민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하는 키워드이다. 그런데 공익이라는 개념이 교묘하게 왜곡되고 변질되는 현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파업에 대한 엄격한 규제라든가 언소주 사건에서 나타난 것처럼 소비자운동에 대한 규제의 경우 어김없이 다음과 같은 담론이 횡행하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즉, 그러한 행위는 기업의 경제적 손실을 야기하고 시민의 불편을 초래하며 궁극에는 국가의 경쟁력 감퇴를 가져올 수 있고 그 피해는 결국 시민에게 되돌아온다는 논리이다.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집회·시위의 경우에도 ‘도심교통의 마비 → 시민들의 불편과 경제적 손실 초래’의 논리가 작용하고 있으며, PD수첩사건, 미네르바 사건 등 비판적인 표현의 경우에도 ‘무분별한 언론보도나 인터넷상의 표현행위는 국가의 정책적 신뢰성의 상실 야기→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의 신인도를 떨어뜨릴 위험’이라는 담론이 등장한다.
    이러한 담론은 ‘공공성’ 내지 ‘공익’의 변질과 왜곡을 동반한다. 집회·시위의 공간은 민주주의적 표현과 의사소통의 공간이 아니라, 단지 자동차로 상징되는 자본의 원활한 유통과 그것을 후원하는 사회질서의 안정성을 저해한다는 차원에서 ‘범죄시’ 되고 있다. 공익은 곧 ‘국가의 신자유주의적 경쟁력 증대’라는 논리가 지배하고 있으며, 공적인 것은 사적 주체들의 경제적 이익의 극대화라는 관념이 지배하고 있다. 이런 담론이 우리 사회의 이데올로기로 횡행하는 현실에서 대규모 사업장의 파업이나 도로에서의 집회·시위는 공익에 피해를 주는 것으로 표상되게 마련이다. 시민의 연대와 민주주의를 위한 기초로서 보장되어야 할 표현의 자유는 자본과 자본을 보증하는 국가질서의 안정이라는 담론 앞
    에서 무력하게 분쇄되고 파괴되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을 말하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외쳐야 하는 것은 국가권력과 자본의 폭력에 대한 시민의 민주주의적 연대성을 복원하는 거대한 작업의 시작이다.

    4. 표현의 자유의 보장원칙 – 규제의 한계

    흔히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그것이 무제한적인 것은 아니고 일정한 경우에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을 거론한다. 표현의 자유도 헌법상 법률유보의 원칙과 과잉금지의 원칙 하에서 필요한 최소한도에서는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와 같은 기본권 제한의 논리가 표현의 자유의 특성과 인권법적 의미를 망각한 채로 적용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두 가지를 중요하게 거론할 필요가 있다.

    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은 오늘날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가 가능하더라도 위험의 ‘명백’ ‘현존’ 하에서 매우 엄격한 요건하에서만 규제가 정당화될 수 있음을 나타내는 원칙이다. 어떤 표현이 실질적 해악을 가져올 것이 명백하고 그 위험이 현존하는 경우에 비로소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허용될 수 있다는 원칙을 일컬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이라고 부른다.
    이 원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표현’과 ‘행동’의 분리를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정치적, 문화적 표현도 – 극히 예외적으로 타인의 인격적 주체성을 부정하는 표현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 그 자체로는 결코 해악적이지 않다. 표현은 일정한 가치의 표현이고 그 표현에 담긴 가치에 대한 선호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가치의 표현은 그 자체로 해악적이지 않다. 표현이 실질적인 해악으로 연결되는 것은 오로지 행동을 매개로 할 때에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표현에 대한 규제는 그것이 실질적인 해악(적 행동)을 발생시킬 명백하고 급박한 위험이 존재하는 경우에만 비로소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법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을 모른다! 예를 들어,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요건을 규정하고 있는데,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이 요건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법해석과 적용에서는 ‘명백성’의 요건은 반영되어 있다고 할지 몰라도, ‘현존하는 위험’이라는 요건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사법당국은 북한의 정책에 동조하는 표현이나 주장에 대하여 그 표현된 내용을 가지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끼친다는 식으로 국가보안법의 규제를 정당화하고 있다. 또 다른 예로, 집시법 제5조는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를 ‘절대적 금지’로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에도 ‘현존하는 위험’이라는 기준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위험의 현존성’이라는 규제원리는 일정한 표현이 그 자체로는 해악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출발하여 어떠한 표현에 대한 규제는 그러한 표현이 타인의 법익이나 공익에 대한 실질적인 해악적 행동으로 표출될 수 있는 급박한 상황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의 법적용 현실에서 ‘위험의 현존성’ 요건이 무시되고 있다는 것은 표현에 담긴 가치와 표현내용을 가지고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한가지, ‘명백한 위험’ 요건조차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의 현실 속에서 무력화되고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표현과 주장은 언제나 ‘공익에 대한 위험’으로 간주된다. 앞서 언급한 공익 개념의 변질을 감안하면 정부나 지배권력에 대한 비판적인 저항적 표현이 ‘공익에 대한 위험을 야기하는 행위’로 얼마나 쉽게 간주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나. 위축효과의 금지

    위축효과(chilling effect)란 합법적인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외부적 통제에 순응하여 그러한 행위를 회피하게 되는 현상을 지칭한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가 광범위할수록, 자의적이고 모호한 규제가 횡행할수록 위축효과는 더욱 커진다. 특히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서 위축효과가 문제 되는 것은 위축효과가 시민들의 자기검열을 일상화하는 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는 그 하나하나만 놓고 보면 심각한 침해라는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저강도의 규제라 하지라도 그러한 억압과 규제가 광범위하고 은밀하게 축적되는 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회 전체적인 통제의 강도는 결코 미약한 수준이 아니다. 특히 인터넷 등 온라인 공간에 대한 국가권력의 사찰과 통제는 위축효과와 자기검열의 메커니즘을 통해 시민성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이데올로기 효과를 창출한다. 규제되어야 할 표현을 자주 하는 시민은 어느샌가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의심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반 시민들에게 엄청난 이데올로기적 교육효과를 발휘한다. 그러므로 위축효과의 금지는 단지 시민들이 무엇인가를 말하는데 주저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소극적인 원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위축효과는 곧 표현의 내용에 대해 권력적 통제를 가함으로써 특정한 이념이나 가치를 중심으로 시민성을 편 가르기 하는 권력작용이며, 결국에는 편협한 시민성이 의사소통 공간을 점령하게 만드는 교육적 이데올로기 장치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시민의 연대와 민주주의를 파괴하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5.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인권시민사회 진영에서 구성한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연대”는 우리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고 억압되는 지점들을 드러내 보여주면서 표현의 자유를 제대로 보장하기 위한 개선방안을 제안하고 사회적 공론화를 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 정책제안서를 발간하게 되었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후퇴하고 있다는 진단은 국제적으로는 물론 우리 사회 내부적으로도 공감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정책보고서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여러 가지 법제도와 관행을 비판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진정한 시민적 자유로서 표현의 자유를 복원하고자 하는 사회운동을 제안한다.
    표현의 자유 침해에 대한 우리 사회의 경각심은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정치·경제적 맥락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를 교묘하게 정당화하는 법제도 및 그 기저에 있는 법담론을 비판적으로 해체함으로써만 근원에 다가갈 수 있다. 아래에서는 표현의 자유의 다양한 영역별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의 현실과 개선방안을 심도있게 분석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몇 가지 총론적인 원칙을 정리해 본다.
    첫째, 표현의 내용에 대한 규제의 철폐이다. 표현의 내용, 특히 정치적 담론과 표현의 경우 그 주장내용이나 사상은 그 자체로 ‘해악적’이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의 표현은 그 자체로 철저하게 보호되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는 오직 표현이 특정의 행동을 매개로 하여 공공의 안전이나 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을 현실로 초래하는 경우로 한정되어야 한다. 표현의 내용에 대한 사전검열은 물론이고 표현 내용을 이유로 한 모든 사후적인 통제도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에 의하지 않는 한 정당화될 수 없다.
    둘째, 표현공간의 민주주의적 공공성의 복원이다. 표현이 이루어지는 공간의 민주주의적 성격과 시민의 자율성이 존중되어야 한다. 인터넷, 도로 등 표현공간의 ‘민주주의적 공공성’을 확보하는 과제가 매우 중요하다. 인터넷 행정심의제도를 비롯하여 표현공간에 대한 국가적 개입과 통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일각에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각종 규제의 철폐가 사회의 무질서를 낳게 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한 우려를 이해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러한 우려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 온 우리의 역사와 현실 속에서 만들어진 위축효과와 자기검열의 산물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의 철폐는 표현의 자유를 시민의 진정한 인권으로 돌려놓는 시작점이다. 표현의 자유는 시민적 연대성과 민주주의를 확장하고자 하는 시민사회의 역동성이 동반되면서 만개할 수 있을 것이며,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는 그렇게 선순환의 구조로 들어설 수 있다.
    그 시작은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각종 규제장치들을 해체하는 것이며,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규제의 철폐를 “표현의 자유”의 이름으로 외쳐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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